본문 바로가기
마케팅개론

(마케팅역사)마케팅의 시작, 생산중심의 시대 이해와 마케팅성공사례

by 프로기획자 퍼플리 2022. 8. 18.
반응형
마케팅역사, 1900년대초, 제품지향의 시대 마케팅
 
 
오늘은 마케팅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860년대~1930년대는 기업의 시대이자 제품지향의 시대라고도 표현하는 생산중심의 시대였습니다. 

 

왜 생산중심(기업)의 시대였는가?

 

오늘날의 대량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부터입니다. 산업혁명은 명칭만으로는 갑작스럽게 어떤 기계나 기술의 발명이 생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르네상스 이래 유럽의 전반적인 근대적 발전을 배경으로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서서히 누적되면서 어떤 임계점을 기점으로 경제·사회적인 변화가 급속도로 일어난 커다란 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사회경제적 변화와 기술의 혁신,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아 크게 변한 인류 문명의 총체를 일컫는 말로,  영국에서 일어난 방적기의 개량을 시작으로 영국의 산업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시작되었고 이 기술 혁명은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 사이에 유럽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습니다. 은 바로 면직물 공업에서 시작되었다.

 

나무위키는 이 시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산업혁명 시기는 수공업에 기초한 작업장들이 기계설비를 갖춘 큰 공장(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전환되었으며, 자본주의 경제가 확립되었다. 혁명은 19세기에 유럽을 넘어 북미, 그리고 아시아로까지 확산되었다. 독일의 사회주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시대 구분으로서 1780~1840년대에 진행된 제조업, 공업의 기계화와 공장화를 처음 '산업 혁명'이라고 지칭했으며,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가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라는 책에서 이 표현을 사용하면서 대중화되었다.

현대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사회 제도의 거의 모든 것이 산업 혁명 시기에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양적인 면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는데, 15세기와 21세기를 비교하면 인구는 5억에서 70억으로 늘었고 전 세계 총생산은 2,500억 달러에서 60조 달러로 불어났다. 참고로 15세기 전세계 총생산액의 5배 되는 돈(1.3조 달러)이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잔고에 있다.

 

이런 변화를 요약정리하면

1차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소비재와 경공업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를 말하고,  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중후반에 전기화학 등 중화학 공업이 시작된 것으로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증기기관 등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사건이 있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나눈 것이라고 여기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이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 혁명을 3차 산업혁명이라고 이름 붙이고 인공지능으로 인한 기술 혁신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지칭하여 이러한 용어가 세간에 퍼졌지만,  1, 2차 산업혁명에 비해 3, 4차 산업혁명은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당대를 설명하면서 자의적으로 붙인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3차, 4차 산업혁명을 그저 산업 혁명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한국에서는 굉장히 화제인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도 영미권에서는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는 개념입니다. 경제 성장률이 0%에서 머물렀던 인류가, 경제 성장이라는 것을 최초로 이루게 된 1차 산업혁명에 비해 3, 4차 산업혁명은 그 성과나 실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리원교육의 송조은 교수는 지금을 산업혁명의 한 챕터인 4차산업혁명이 아니라 인공지능시대로 정의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는 인간지능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대이니까요. 각설하고. ㅋ

 

특히, 이 시대에는 화폐를 통한 교환과 거래가 개념적으로 정착되었지만, 시대적으로 기업의 공급능력 대비 초과수요 형태를 보이며 생산물량을 증대시키는 생산 관리적 측면이 부각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마케팅의 발전은 기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시대의 기업들은 소비자의 필요 욕구 충족에 관계없이 제품의 제조와 유통에만 관심을 갖고, 그 효율성을 개선함에 주된 관심을 두었습니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할 욕구가 높고 생산품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생산과 유통의 효율성 제고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기업 시대에는 산업화와 국가 경쟁 및 사업 확장이 미국에 광범위한 경제 성장과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시기는 이민과 금융 위기, 노사 간의 대립이 만연했던 격동기였습니다. 미국은 도시 국가가 되었고 경제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벌어지는 한편, 중산층은 점점 늘어났으며, 이들의 소득과 소비도 증가하였습니다.

공급보다는 수요가 많은 판매자 중심의 시대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의 수가 소비자들의 수보다 현저하게 작기 때문에 생산만 하면 자연스럽게 소비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기업은 새로운 제품 개발이나 기능의 발전 및 추가 노력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핵심은 원가절감과 가격인하, 생산 방법이나시간의 개선, 유통을 효율화하였습니다. 차츰 생산증대  성과가 나타나면서 과잉수요가 점차 해소되기 시작하였고, 기업은 경쟁기업보다 양질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제품의 품질개선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품질개선의 결정권이 아직도 생산자에게 있으면서 제품지향의 시대 역시 불완전한 형태의 마케팅 시대를 나타내게 됩니다. 즉, 아무리 자사의상품에 대한 품질개선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시장에 새롭게 등장하는 상품의 출시는 막지 못하니까요.

 

 

1900년대초 마케팅사례

제품지향의 시대에는 어떤 마케팅이 있었을까?

 

미국 포드슨(Fordson) 트랙터, 1920년대
가스 동력을 이용하는 트랙터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농부들은 말이 끄는 기구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923년에 거래된 트랙터의 75 퍼센트가 포드슨 트랙터였습니다. 그러나 포드사는 트랙터의 현대화를 꺼린 결과, 1928년에 결국 실패를 맞게 되었습니다.

 

미국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
토마스 에디슨의 끈질긴 자체 홍보와 더불어, 성공은 기억하고 실패는 잊어버리는 미국인들의 성향 덕분에 그는 전국적으로 발명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879년의 그의 전기 조명 장치는 예견된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작은 괴물”이라고 불렀던 1890년의 말하는 인형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음성의 질은 좋지 않으면서 비싸고 무거웠던 그 인형들은 시장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미국 싱어사
싱어 사(Singer)는 최초의 대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재봉틀이 획기적인 기술이기는 했지만 성공을 거두는 데 여러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이 회사는 기발한 마케팅으로 사세를 키우며 전 세계에 여러 공장과 판매점을 열었습니다. 막대한 사무 인력을 고용하여 지배력과 수익성을 유지하였습니다. 1900년까지 싱어 사는 다국적 기업이 되었습니다.

미국 인텔
인텔은 1900년대 초 미국의 극심한 경제불황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물량의 '인텔인사이드' 광고를 실시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늘려 시장점유율을 높였습니다. 

 

 

 

 

 

 

 

 

참조

마케팅개론 
나무위키 
smithsonian

매일경제기사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08/12/744668

 

반응형

댓글